
수익성은 악화되고, 전문성은 파편화되며, 생성형 AI 도구가 기존의 분업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는 오늘날, 박성호 대표는 광고 업계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 광고 대행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서울의 광고 산업은 현재 두 개의 시대가 공존하는 기묘한 과도기에 놓여 있는 듯합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관습이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광고주로부터 의뢰서(Brief)가 도착하고, 기획안이 짜입니다. 캠페인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작되어 실행되고, 최적화를 거친 뒤 깔끔하게 다듬어진 성과 보고서의 언어로 기록됩니다. 이 익숙하고도 정형화된 일련의 과정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일종의 안도감마저 줍니다.
하지만 이 오래된 리듬의 이면에는 훨씬 더 가혹하고 새로운 흐름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생성형 AI와 짧아진 제작 주기, 악화되는 수익성, 그리고 전문 영역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광고주들은 과거 대행사만의 전유물이었던 업무를 직접 수행하기 시작했고, 한때 전문적이라 여겨졌던 도구들은 이제 누구나 손쉽게 다루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이제 '전문성'이라는 훈장만으로는 더 이상 경제적 주도권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박성호 대표는 바로 그 격변의 단층면 위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광고 대행사를 운영하며 동남아시아로 시장을 확장하는 동시에, 국내 시장의 위축과 글로벌 시장의 기회 사이를 노련하게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일시적인 경기 불황으로 치부하지도, 신기술을 마주할 때 흔히 나타나는 막연한 낙관론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대신, 지금 변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비즈니스 환경이 아니라 '광고'라는 직업의 구조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이 특유의 담담함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전문화의 구조(The Architecture of Specialization)
오랜 시간 동안 광고 대행사는 '조직화된 전문성'을 판매해 왔습니다. 전략은 한 그룹의 영역이었고, 카피는 또 다른 그룹, 아트 디렉션은 또 다른 그룹의 몫이었습니다. 제작, 매체, 퍼포먼스, 기획에 이르기까지 각 기능은 저마다의 규율과 위계, 그리고 권위를 뒷받침하는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캠페인이란 이러한 요소들이 정교하게 조율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대행사가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유는 전문가들을 모으고, 그들의 방향을 정렬하며, 그 복잡한 과정을 대중을 설득하는 형태의 결과물로 치환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박성호 대표는 이제 이러한 논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광고가 공식적으로 '전문 기술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과거에 이 문구는 일종의 제도적 품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희소성과 기술, 그리고 훈련된 전문가의 필요성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도구들이 급격히 민주화되고 있는 지금, 박성호 대표는 과연 그 전제의 무엇이 남아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행사가 독점했던 업무의 상당 부분을 광고주가 직접 처리하거나 시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과연 대행사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소프트웨어가 과거의 진입 장벽(Gatekeeping)을 허물어뜨린 지금,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는 이 질문들을 그저 수사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를 생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영자이자 실무자, 그리고 전략가의 입장에서 던지는 절박한 질문들입니다.
디지털 전환 (The Digital Transition)
그는 과거 디지털 전환의 초기 물결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레거시 미디어에서 모바일과 플랫폼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축이 이동할 때는, 오히려 전문가들의 가치가 높아졌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는 새로운 전문가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신생 포맷과 새로운 지표, 변화하는 소비자 행동,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분야가 복잡해질수록 그만큼 더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의 '파괴적 혁신'은 전문성에 보상을 내렸던 셈입니다.
하지만 박성호 대표가 보기에 AI 시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번 기술적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카테고리의 전문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전문 영역들을 하나로 압축해 버립니다. 과거에 여러 팀이 달라붙어야 했던 업무가 이제는 적절한 도구와 판단력, 그리고 속도를 갖춘 단 한 사람의 워크플로우 안에서 해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의성이나 자동화에 대한 추상적인 논쟁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이 변화가 대행사가 직면한 핵심 질문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 사람이 혼자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가?"
박성호 대표는 이 질문을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게 던집니다. 과거의 대행사들이 대규모 팀, 다층적인 프로세스, 눈에 보이는 협업 체계 등 '규모'를 팔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가 바라보는 업계는 더 적은 인원, 더 넓은 역량, 더 빠른 제작, 더 낮은 비용, 그리고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는 냉혹한 기대치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가 상상하는 미래의 대행사는 가장 정교한 전문화 구조를 유지한다고 해서 승리하지 않습니다. 대신, 과거에 분리되어 있던 수많은 기능들을 최대한 통합하여 더 날렵하고 적응력 높은 시스템으로 만드는 곳이 승리할 것입니다.
압박과 전략 (Pressure and Strategy)
한국의 독립 대행사들에게 이러한 압박은 특히나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내수 시장은 수년째 위축되고 있으며, 삼성, 현대, LG와 같은 대기업 계열 인하우스 대행사들의 독주 체제 속에서 중소 대행사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 자리를 넓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독립 대행사는 단순히 국내 시장이 다시 관대해지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야만 합니다.
박성호 대표가 내놓은 해답은 회사를 두 가지 전략적 핵심축인 '글로벌'과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축은 실용적이면서도 야심 찬 선택입니다. 한국 시장이 좁아지고 있다면, 성장은 외부에서 찾아야 합니다. 외국 브랜드를 유치하거나, 한국 기업이 국경을 넘어 소통하는 것을 돕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박성호 대표는 확장 계획서나 투자자의 낙관론에나 등장할 법한 추상적이고 경영학적인 언어로 글로벌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를 '문화적 번역의 실행'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최근 진행한 한 다국적 캠페인에서 몽규는 북미, 한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 시장을 아울렀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오랫동안 짐작해 온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습니다. 시장은 단순히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취향, 감성의 결, 시각적 기대치, 그리고 설득이 신뢰를 얻는 조건 자체가 서로 다릅니다. 동일한 캠페인 논리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그대로 복제한다고 해서 똑같은 공명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한 시장에서 신선하고 효과적으로 느껴졌던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가 다른 곳에서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감성적으로 빈약하거나, 문화적으로 겉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실무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광고란 '표준화'의 과정이라기보다, 세밀하게 관리된 '변주'의 과정에 가깝습니다.
박성호 대표는 이 교훈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차이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운 데서 오는 자신감입니다. 독립 대행사에게 이러한 문화적 유연함(Fluency)은 그 자체로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적 필연성 (The Technology Imperative)
두 번째 핵심축인 '기술'은 그가 더욱 절박하게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박성호 대표는 광고 산업이 시장의 상상력을 재편하는 기술적 트렌드가 나타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그 흐름에 편승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디지털 트윈과 몰입형 시스템이 주류였고, 팬데믹 기간에는 브랜드들이 명확한 비전보다는 열정만을 앞세워 메타버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AI가 결정적인 힘으로 부상했습니다. 단순히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반짝이는 '기믹'이 아니라, 아이디어 구상부터 제작, 매체 실행, 비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대치를 바꿔놓는 운영 인프라로서 말입니다.
박성호 대표의 관심을 끄는 것은 혁신이라는 '화려한 무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혁신이 가져올 실질적인 결과입니다.
그는 글로벌 키위 브랜드인 제스프리(Zespri)의 캠페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광고주의 요청은 명확했습니다. 캠페인 전반에 AI를 의미 있게 녹여내달라는 것이었죠. 이에 그의 팀은 소비자가 사진 한 장을 업로드하면 이를 세련된 퍼포먼스 영상으로 변환해주는 챌린지 메커니즘을 설계했습니다. 이 혁신의 핵심은 단순히 'AI를 썼다'는 사실이 아니라, 참여의 문턱(Friction)을 없앴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즐겁고 공유하고 싶어지는 결과물이 만들어졌고, 이는 과거의 정적인 참여 방식보다 훨씬 즉각적인 몰입을 끌어냈습니다.
AI는 제작 측면에도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합성 기술(Synthetic compositing)을 활용해 대규모 실사 촬영이 필요했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습니다. 매체 집행 단계에서도 과거에는 수많은 대행사와 복잡한 조율이 필요했던 기획과 배포 과정을 최신 '올인원 솔루션'으로 단순화했습니다. 박성호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나타난 놀라운 결과는 효율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캠페인은 초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바이럴 효과(증폭)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의 교훈은 더 냉혹합니다. AI가 제작의 문턱을 낮추면, 그만큼 특정 전문 지식이 가졌던 '희소 가치'도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높은 수수료를 정당화했던 전문 기술 업무들이 이제는 점차 표준화된 서비스로 재해석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잠식의 경제학 (The Economics of Erosion)
이 대목은 현재 광고 대행사 경제가 겪고 있는 권태와 침체의 원인을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박성호 대표는 현재 업계 전반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바로 '매출은 늘어나는데 수익성은 악화되는' 패턴입니다. 프로젝트의 수는 많아지고, 업무 범위는 넓어졌으며, 마감 기한은 짧아지고 광고주의 요구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하지만 마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영 미숙이나 비효율적인 인력 배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구조적입니다. 실행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광고주들은 이제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고 느끼는 역량에 대해 더 이상 높은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행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보상에 대한 과거의 논리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다시 뒤바뀔 것이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광고 수수료가 갑자기 오를 리 없고, 비용 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광고주들은 계속해서 '낮은 비용에 높은 퀄리티'를 요구할 것이며, 대행사는 그에 맞춰 스스로를 재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박성호 대표의 해답은 무서울 정도로 명쾌합니다. 더 많이 내재화하고, 더 많이 간소화하며, 외부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적은 인원이 더 많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의 회사는 개발사를 인수하고 개발자, 기획자, 인터랙티브 크리에이터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업 다각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적 압축(Structural Compression)'입니다. 외부 의존도를 높이지 않고도 기술 중심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대행사를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박성호 대표가 상상하는 생존 방식입니다. 과거의 대행사 모델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이 아니라, 설계 자체를 다시 하는 것(Redesign)입니다.
출저 : [서울 시그널스] 유승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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